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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테니스 악마의 재능, 닉 키리오스(Nick Kyrgios)

by binzzan 2022. 7. 10.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이들 빅3와의 첫 번째 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선수는 역사상 단 세 명이 있다.

빅3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기본기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빅3도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강점을 지닌 선수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도미니크 에르바티(슬로바키아), 레이튼 휴이트(호주) 그리고 악동 닉 키리오스(호주)다.

페더러의 코치를 맡기도 했던 폴 아나콘은 키리오스를 두고 페더러 이후 가장 재능 있는 선수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키리오스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테니스에 대한 동기가 부족한 선수로 자주 회자된다.

키리오스는 2013년에 데뷔하여 어느덧 투어 9년 차 선수이다. 이제까지 6개의 타이틀을 획득했고 최고 랭킹은 2016년 13위, 현재는 77위에 머물러 있다. 커리어 초반 나달과 페더러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그가 차세대 톱10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는 조코비치를 상대로 2승 무패의 놀라운 전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키리오스가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불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키리오스는 심판과 잦은 언쟁을 벌이고 라켓을 자주 부수어 11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 최고 기록도 갖고 있다.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탓인지 부상이 많아 기권과 대회 취소가 빈번하다. 심지어 경기 중에도 심사가 틀어지면 서브를 대충 넣고, 리턴을 하지 않는 등의 행동으로 팬들을 실망시킨다. 원조 테니스 악동 존 매켄로는 키리오스에 대해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키리오스의 문제는 정신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더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키리오스가 잘 모르는 것 같다. 매우 안타깝다. 톱 플레이어가 되고 그랜드슬램 우승을 원한다면 거울을 보며 자신의 태도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16년 윔블던 머레이와의 4라운드 2시간 전 휴이트의 복식 경기를 관람하며 자신의 준비를 게을리한 것에 대해)

“키리오스는 프로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일을 알아봤으면 한다. 그는 훈련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친 것이다.” (2016년 US오픈 3라운드에서 엉덩이 부상을 이유로 기권 후)

한편 매켄로의 비판이 키리오스의 재능에 대해 알아본 애정 어린 충고였음을 느낄 수 있는 인터뷰도 있다.
“키리오스는 최근 10년간 보아온 선수 중에 가장 재능이 있는 선수다. 그가 지금처럼 테니스에 몰입하지 않는 자세를 이어간다면, 그 자신을 소진시켜 커리어를 단축시킬 것이다.” (2018년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

“내가 현역 선수들 중 코치를 맡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닉 키리오스다.” (2021년 윔블던 라디오 인터뷰)

키리오스가 테니스에 대한 동기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키리오스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테니스를 정말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14살 때 농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테니스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부모님이 테니스를 원하셨다. 테니스 코트에 나서는 것은 좋다. 어디에도 숨을 공간이 없으며 기술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당신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난 농구를 사랑하고 항상 그래왔다. 테니스 경기에 임할 때는 집중을 하기 위해 농구 경기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키리오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테니스에 대한 내적인 동기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스포츠를 하면서 즐겁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부모님에게 등 떠밀려 선수가 된 것 같다. 물론 1987년 윔블던 우승자인 패트 캐시(호주)는 “닉 키리오스가 테니스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이해한다. 나도 테니스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단지 테니스를 잘 했을 뿐이다. 안드레 애거시도 같은 말을 했다”라며 키리오스를 이해해주는 발언을 했다. 키리오스가 경기에 열정적으로 임할 때는 관중과 함께 호흡하며 관중을 열광시키는 능력이 있다.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는 물론 언더암 서브, 가랑이 샷과 같은 변칙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관중들을 즐겁게 한다. 키리오스의 성향에는 조용한 가운데 혼자서 플레이하는 테니스보다 관중들의 함성이 가득한 코트에서 팀 플레이를 하는 농구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키리오스를 비판하는 팬들도 키리오스의 에너지가 넘치는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게 아닐까? 간절하게 테니스 재능을 원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테니스 재능을 부여한 것은 악마의 장난으로 보인다.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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